연구자가 말이나 글로 전달하는 지식을 이해하고 실험 계획에 반영하는 자율실험실용 인공지능(AI)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다. 복잡한 코드나 수식 없이 자연어로 AI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어, 연구자가 AI와 동료처럼 소통하며 실험을 진행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는 평가다.
한국화학연구원, ‘인간 참여형 최적화’ 기술 개발
한국화학연구원(화학연)은 안광노 화학플랫폼연구본부 선임연구원이 이끈 연구팀이 연구자의 자연어 입력을 대규모언어모델(LLM)이 해석해 실험에 필요한 정보로 변환하는 ‘인간 참여형 최적화’ 기술을 개발했다고 14일 밝혔다.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저널 오브 케미컬 인포메이션 앤 모델링’에 8월 10일 게재됐다.
자율실험실의 한계와 새로운 접근
자율실험실은 AI가 스스로 변수를 바꿔 가며 최적 조건을 찾는 차세대 연구 시스템이다. 정해진 실험만 반복하는 자동화 장비와 달리 결과를 학습해 다음 실험을 스스로 설계한다.
문제는 기존 자율실험실의 AI가 인간 연구자라면 기본 상식으로 알고 있는 ‘온도를 올리면 수율이 오른다’와 같은 지식을 갖추지 못해 값비싼 실험을 반복하며 체득한다는 점이다. 합성이나 분석에 반나절 이상이 걸리고 분석 비용이 큰 촉매 실험 등에서는 낭비되는 실험 하나하나가 큰 부담이 된다.
기존 경험과 지식을 AI에 전수하는 것이 자율실험실 구축의 핵심 기술이지만, 아직 기술 개발이 제한적이라 연구자가 복잡한 코드나 수식을 통해 AI에 정보를 입력해야 했다.
LLM과 베이지안 최적화의 결합
연구팀은 자연어를 이해하는 언어 모델을 ‘베이지안 최적화 AI’에 연결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베이지안 최적화 AI는 적은 횟수의 실험으로 최적 조건을 효율적으로 찾아가는 대표적인 AI 탐색 기법이다.
연구자가 편하게 말로 지식을 전달하면 언어 모델이 통역가처럼 이 지식을 AI가 활용할 사전 정보와 제약 조건으로 변환해 베이지안 최적화 AI에 전달한다. 연구자의 지식이 틀린 경우 AI가 연구자의 조언을 검증하는 ‘적응형 신뢰도 검증’을 통해 안전장치도 더했다.
실험 시간 4분의 1로 단축
실제 실험 데이터로 구성한 가상실험 환경에서 검증한 결과, 연구자가 전달한 사전지식을 갖춘 자율실험실은 데이터를 거의 넣어주지 않고도 데이터 40개를 넣어준 것과 비슷한 최적화 성능을 보여줬다. 목표 성능에 도달하는 탐색 시간은 최대 4분의 1로 단축했다.
연구팀은 실험 도중에도 대화를 통해 연구 방향을 수정할 수 있는 ‘AI 코사이언티스트(공동연구자)’ 인터페이스도 함께 개발해 공개했다.
“이번 기술은 연구자와 AI가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함께 연구하도록 돕는 ‘실험 동료’이자 자율실험실의 두뇌 역할을 하는 핵심 소프트웨어”라며 “연구개발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 안광노 한국화학연구원 선임연구원
의의와 전망
이번 연구는 자율실험실이 연구자의 암묵지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자연어 인터페이스를 통해 연구자는 코딩 부담 없이 AI와 협업할 수 있게 됐으며, 적응형 신뢰도 검증으로 잘못된 지식이 실험에 미치는 영향을 줄일 수 있다. 향후 촉매 개발, 신소재 탐색 등 고비용 실험 분야에서 연구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